도메인 : christian-fci.kr
기독교장례문화

기독교 장례문화를 위한 제언


요즘은 그리스도인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천국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죽음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태어나는 날이라며 천상의 생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교회에서 죽음의 의미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자세히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임종 예비교실인데. 그 대상은 죽음을 앞둔 사람일 수도 있고 가족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유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에서의 삶은 어떠하며 이를 위해 이 땅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제사와 묘지 문제처럼 반기독교적인 요소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임종 예비교실을 운영하는 교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불교에서도 시왕전이나 명부전이라고 해서 죽음에 대한 교육이 있다는 것은 한 번쯤 기독교인들이 반성해볼 일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죽음과 관계된 예식을 장례식(葬禮式), 혹은 장례예배라고 부릅니다. 풀어서 말하면 땅에 매장할 때 갖는 예식이나 예배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을 잘 살펴보면 이때 사람들의 관심은 땅에 묻는 매장에만 쏠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장례식 분위기는 비극적인 이미지로 일관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땅에 묻히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천국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땅에 묻히는 것보다는 그 이후의 삶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인예배라고 부르지 않고 천국환송예배라고 해야만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몇몇 뜻있는 분들께서 장례예식서 또는 지침서를 편찬했지만

교단 또는 교회별 장례예식과는 상반된 내용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통일된 기독교 장례 지침서가 필요할 때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가지의 절차를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떤 것이 기독교 신앙에 적합하고 어떤 것이 어긋나는 것인지 도무지 기준이 서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임종은 어떻게 준비하고, 사망 신고는 어떻게 하고, 장례 절차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등등 기독교 의식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장례 예식입니다.

따라서 임종 준비 방법, 시신의 처리 방법, 임종 예배드리는 법, 입관 전후에 할 일, 장례 예배 준비법 등을 순서대로 꼼꼼하게 유가족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만 가족 간의 갈등도 없애고 번거로움을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종 목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장례 지침입니다. 아직은 장례의례 지침을 마련한 교회들이 많지 않지만 바람직한 기독교 장례 문화를 위해선 이러한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교회에 나오라고 하면 기를 쓰고 발뺌을 하는 사람들도 알아서 교회를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어렵사리 교회를 찾아온, 아니면 적어도 목회자와 자리를 함께하게 된 사람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장례 예배 자체를 복음 전파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불신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내용에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와 가족 사랑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주로 들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천국과 부활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빼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명설교가 스펄전은 이에 대해 장례 예배에서조차 전도하지 못한 설교가는 어떤 강대상에서도 설교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장례 예배에 투자되는 시간을 현재보다 두 배로 늘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례 예식을 빨리 해치운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사실 장례 예식이 며칠 동안 지속하다 보면 유가족들도 지치고 목회자들도 지치게 마련이지만 가까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은 아무리 오랫동안 위로해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 정성을 다해 유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시편을 읽어주며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이나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교회에서 가족들 모르게 유언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두었다가 훗날 유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 일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얼마를 남겨준다는 유언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부탁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로 분가한 막내아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아, 이 어미가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부탁하고 싶다. 이제 하나님 품으로 가니 아무 염려도 없지만, 단 하나, 네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네가 그 소원만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면 그다음에 막내아들이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자명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목회자가 먼저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솔선해서 시신을 기증하거나 장기를 기증하고 화장을 하도록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앞장서서 죽음을 초연하게 맞이하는 모범이 되고 나면 교인들이 변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장례 예배를 계기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만큼 장례 예배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한 교제와 신뢰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례 이후에 유가족들의 아픔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위로해주는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장지로 나설 때 목회자가 맨 앞에 서고, 또 어떤 교회에서는 십자가나 고인의 사진이 맨 앞에 서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에는 장례 예배 시간에 유가족들을 위한 조사를 준비하지만 어떤 교회에는 아예 그런 순서 자체가 없기도 합니다.

천주교는 이런 세세한 항목을 정리한 장례 의식서가 통일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무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통일성이 빠져 있습니다.

교단마다 장례 방법이 다르고 의식서도 다르며 또 교회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릅니다. 혹 교단에서 통일된 예식서를 마련해주었다 해도 목회 현장의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예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장례 문화 토착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지만 너무 다양해서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한 사람의 힘이나 일부 교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한국 교회를 대표할만한 연합기관이나 신학대학, 또는 연구기관에서 이에 관한 연구를 추진해 통일된 기독교 장례 지침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업체 : 기독교장례문화연구소   |   사업자등록번호 : 607-82-90390   |   대표 : 전상현
전화번호 : 031-215-6573   |   휴대폰 : 010-7292-4949   |   이메일 : [email protected]
주소 : 수원시 팔달구 권광로 367번길 77(동수원한방병원 B1층)

COPYRIGHT 2025 ⓒ 기독교장례문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